본문 바로가기
마흔, 이직할 결심

시작

by 이고트 2023. 6. 23.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야근 모드로 저녁 식사를 한 뒤 홀로 사무실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 의자에 철퍼덕 앉아서 잠시 멍을 때린다. 

 누가 말을 걸지 않으면 한없이 그렇게 있었을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한 것처럼 10년 뒤 나의 미래를 만나고 왔던 것 같다.

10년 뒤 나의 모습은 지금처럼 야근을 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터벅터벅 들어와

늘 그 자리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린다.


난 밀린 일과 해결하지 못한 일, 직원들과의 관계문제, 조직의 미래 등등..

마치 혼자 모든 걸 책임지는 사람처럼 온갖 짐을 들었다가 놨다 하면서

그렇게 반복되는 매일을 살며 늙어가고 있었다. 


상상이었는지, 망상이었는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영화의 필름처럼 순식간에 10년 뒤 나를 보고 왔던 것 같다.

사실 이런 경험은 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과 느낌이 구체적이었으며, 

나를 마치 줄 달린 인형처럼 팔과 다리를 움직여서

여기 이렇게 앉아있지 말고

너의 미래를 위해 한 발씩 움직이라는 내면의 소리가 느껴졌다.


나는 사무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밀린 일은 확인하지 않고, 

이직과 취업에 필요한 사이트를 미친 듯이 검색하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나를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직을 도전하게 만든 첫걸음이었다. 

 

그 뒤로 나는 가급적 혼자 있는 시간을 일부러 더 만들었던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오롯이 나에게 솔직할 수 있었고,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혹시나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10년 뒤 미래의 나를 보고 온 느낌과 이직에 대한 결심이 잊힐까 봐

나는 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지려 했던 것 같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점심도 가급적 사람들과 같이 먹지 못하도록 회사방침이 내려오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함께 일하는 젊은 직원들도 나와 같이 먹는 게 썩 즐겁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윗사람들과 먹기 싫어하듯이) 

 

이래저래 사람들과 나를 분리시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해야 하는 일들과 회사에서 발생하는 일은 

늘 나를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조차 못하게 더욱 강력하고 복잡한 일들로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부러 더 야근과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나와의 다짐과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복잡한 회사 일들과 사람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할수록 

 

나는 '이직'이라는 히든카드가 더 소중하고 힐링이 되어주었다.